벼 농업계, '수확기 정부미 살포' 트라우마 재현될까 전전긍긍

김필 기자

jdh20841@daum.net | 2023-08-16 16:00:38

농협, 9월 쌀 재고 부족 전망에 정부에 비축미 공급 요청
농민들 "수매기 공공미 살포, 쌀 시세 폭락 부추겨" 우려

[농축환경신문] 농협이 벼 수매를 앞두고 정부에 비축미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벼농사계 일각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수매기에 임박한 시점에 공공미가 풀리면 벼값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6일 농협경제지주와 유관업계에 따르면 농협 측은 쌀 재고 부족을 이유로 정부에 공공미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협경제지주 한 관계자는 이날 농축환경신문과 통화에서 "최근 전국협의회를 통해 정부에 비축미 공급을 요청한 건 사실"이라며 "지금의 (쌀) 재고 현황이라면 9월이면 곳간이 바닥나게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농협 곳간에는 지나 달 기준 약 20만 톤(t)의 쌀이 남아 있는데 보통 월별 전국적으로 최소 10만 톤 이상 규모의 쌀이 소진되는 만큼, 오는 9월에는 농협의 쌀 재고가 바닥이 나게 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중앙정부에 비축미를 요청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농협 측 입장이다.

다만 농업계 일각에선 농협의 대정부 요청은 매수기를 앞두고 쌀 시세를 떨어뜨리는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쌀 공급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와 농협이 근본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는 지난 2021년 하반기 정부미 살포로 '쌀값 폭락' 사태를 맞은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쌀전업농중앙연합회 한 관계자는 "쌀 수매 기간을 앞두고 정부미를 풀게 되면 수확기만 보고 연(年)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뭘 먹고 사느냐"라며 "이는 쌀 가격을 올리겠다던 정부 정책에 반하는 조치이자 농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천청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라고 탄식 섞인 반응을 내비쳤다.

또 전북의 한 농경인단체 소속 관계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쌀 재고가 없어서 정부 쌀을 뿌리는 게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정작 8~9월만 보고 땀을 흘린 농민들은 허탈하기 그지 없다"면서 "가뜩이나 쌀값 장기 침체인데 수급조절도 안 되니 겹악재다. 농협이나 정부가 쌀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잡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렇듯 쌀 재고 부족이라는 농협의 '속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벼 농사인들에게 수확기 전 정부미 공급은 재앙적인 이슈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아울러 농경인들 사이에선 정부가 중대 선거철을 앞두고 지지율이나 민심 동향을 의식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부미를 푸는 것도 죄악시되는 현실이다.

이에 농협 측은 수급 현황을 면밀히 살피고, 정부미 공급이 불가피하다면 시세 변동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농협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보면 쌀 재고 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공공미를 풀어야 한다면 정부미를 필요치에 한해서만 인수할 것"이라며 "대량 공급은 없을 것이고 시장가에 준해 정부미를 풀 수 있도록 최대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인수 이후 잔여 공공 쌀은 즉각 환수될 수 있도록 관할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긴밀한 공조를 이어가겠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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