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급관리 고도화 지침, 심처에는 '관료주의'가?
김필 기자
jdh20841@daum.net | 2023-08-09 15:48:09
정부가 원예농산물 수급관리 고도화 지침을 내놨다. 의무자조금단체로 하여금 원예농작물에 대한 중장기 수급관리 계획을 수립, 이행토록 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사실상 '민간 주도형' 수급관리 어젠다로 비춰지면서, 농업계에선 잡음이 분출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이같은 수급관리 지침을 두고 일각에선 '관료주의'가 깃들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농산물 수급관리는 정부 주도 하에 민·관 공조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의 이번 고도화 방침의 기저에는 정부의 수급조절 역할론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오면서다.
농식품부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원예농산물 수급관리 고도화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해당 개선안에는 정부 수매비축과 저율관세할당(TRQ) 수입 추진 등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 개편 방안 등이 담겼다. 원예농작물에 대한 선제적 수급관리 기능 강화 차원에서 대대적 제도 손질에 나섰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지만, 민간 농업계를 중심으로 실제로는 의무자조금단체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9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한 관계자는 <농축환경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이번 개편안을 두고 "그간 정부가 수급관리 매뉴얼을 과연 얼마나 지켰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면서 "문제는 이번 매뉴얼에 담긴 수급관리 고도화 항목이다. 의무자조금단체에 대한 성과평가제를 도입하게 되면 민간 수급관리 주체가 정부의 입김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자조금단체의 중장기 발전계획안이 정부 평가를 받게 되는 만큼, 정부 입맛에 맞는 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라며 "민간 자조금단체들이 정부 연계금을 지원받기 위해선 결국 수급관리 부문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대안보다는 정부 정책 기조에 부합한 탁상형 페이퍼 워크(문서작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농식품부의 이번 고도화 방안에 따르면 농산자조금 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의무자조금단체가 수립한 수급관리 발전계획안과 이행 실적을 정부가 평가해 각 단체에 연계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평과제' 도입이 이뤄질 전망이다.
일견 성과평과제 도입이 현실 반영에 충실한 민간발(發) 수급관리안 도출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들 민간 단체들이 정부 수급관리 코드에 동조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민간 자조금협의체의 우려 섞인 시선이다. 아울러 큰 틀에서 농산물 수급조절 이정표를 제시해야 할 정부가 민간에 일정부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훼 분야 자조금협의회 소속 한 관계자는 "성과평가제는 민간 자조금협의체들의 수급관리 구상을 촉구하고 책임의식을 제고한다는 명목이지만, 실은 정부의 민간단체 길들이기에 가깝다"라며 "현실성 있는 계획안을 내더라도 정부의 수급관리 기조와 다르면 결국 상대평가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농식품부의 평가 잣대에 의문을 표했다.
이 밖에도 정부 고도화 방안에 담긴 '지역자조금 도입' 항목에서도 시행 주체, 예산 집행 등 구체적인 안은 빠져 있어 혼선이 야기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심지어 업계 일각에선 정부가 은연중에 수급관리 책임을 지역 농가에 떠넘길 수 있다는 음모론마저 분출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급관리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성과평가제는 업계 우려와 달리 정성적, 정량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정부가 뒷짐 지고 민간 자조금단체들에게 수급관리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방침이 아니다. 민간 농가의 수급관리 자구책 마련을 촉진시키고 오히려 그들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매뉴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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